메뉴

검색

농구

[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61] 북한 농구에서 왜 ‘점프볼’을 ‘조약공’이라 말할까

2026-01-11 06:22:29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남북 농구 경기에서 북한 최장신 센터 리명훈(오른쪽)이 점프볼을 다투는 모습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남북 농구 경기에서 북한 최장신 센터 리명훈(오른쪽)이 점프볼을 다투는 모습
농구 외래어 ‘점프볼’은 영어 ‘jump ball’을 음역한 말이다. 심판이 양편의 두 선수 사이에 공을 던져 올려 경기를 시작하거나 계속하게 하는 일이라는게 사전적 정의이다. 점프볼은 높이 뛴다는 의미인 ‘jump’와 공을 의미하는 ‘ball’의 합성어이다. 키가 큰 선수들이 높이 뛰어서 볼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웹스터 영어사전에 따르면 점프볼이라는 말이 공식적인 기록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24년이다. 점프볼이라는 말은 1891년 제임스 네이스미스 박사가 스프링필드 대학에서 농구를 고안할 때부터 사용한 것은 아니다. 네이스미스 박사는 최초 농구규칙 13항에서 점프볼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규칙 9항은 공이 코트를 벗어날 때의 방법에 대해서만 밝혔다. 규칙에서 어느 쪽 공인지 분명치 않을 때에는 심판이 그곳에서 공을 똑바로 던진다라고 명시했다. (본 코너 388회 '왜 점프볼(Jump Ball)이라 말할까' 참조)

우리나라 언론은 1960년대 이후 점프볼이라는 말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경향신문 1962814일자는 大京(대경))과東大門(동대문)이「점프·볼」하고 있다‘는 사진설명식 기사를 전했다.

북한 농구에선 점프볼을 ‘조약공’이라 부른다. 이 말은 농구와는 어울리지 않는 외교 문서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한자어 ‘조약(條約)’은 서로 조건을 맞추고 합의한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국가 간 조약에서 쓰이듯, 북한 언어 체계에서는 약속·합의·규범의 뉘앙스가 강하다. 여기에 ‘공’을 붙인 ‘조약공’은 말 그대로 공을 두고 약속된 방식으로 경기를 시작하는 절차를 뜻한다. 즉, 점프볼을 ‘뛰어오르는 동작’이 아니라 공정한 출발을 위한 제도적 행위로 해석한 결과다.
이 낯선 명칭 속에는 북한식 스포츠 인식이 또렷이 담겨 있다. 남북한간의 차이는 단순한 번역 문제가 아니다. ‘점프볼’이라는 말은 선수의 점프력, 반사신경, 순간적인 우위를 떠올리게 한다. 반면 ‘조약공’은 심판, 규칙, 합의라는 단어들을 연상시킨다. 북한 농구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높이 뛰느냐가 아니라, 모두가 동의한 규칙 아래서 경기가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언어의 초점이 개인의 신체 능력보다 제도와 질서에 맞춰져 있다.

이런 인식은 북한 농구 용어 전반에 반영된다. 자유투는 ‘벌넣기’, 파울은 ‘개별선수반칙’, 드리블은 ‘곱침이’라고 말한다. 모두 기술이나 동작의 화려함보다는 규칙 위반과 그에 따른 처리, 혹은 반복적 기본 행위를 강조한다. 조약공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경기의 첫 순간부터 농구를 ‘경쟁의 장’이라기보다 ‘규율된 활동’으로 규정한다. (본 코너 1647회 '북한 농구에서 ‘자유투’를 왜 ‘벌넣기’라고 말할까', 1659회 '북한 농구에선 왜 ‘파울’을 ‘개별선수반칙’이라 말할까', 1660 '북한 농구에선 ‘드리블’을 왜 ‘곱침이’라고 말할까'참조)

흥미로운 점은, 조약공이라는 말이 경기 개시를 일종의 의례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 의례를 통해 양 팀은 심판과 규칙의 권위를 인정하고, 동일한 조건에서 출발한다는 약속을 다시 확인한다. 점프볼이 역동적 장면이라면, 조약공은 질서의 선언에 가까운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리스트바로가기

많이 본 뉴스

골프

야구

축구

스포츠종합

엔터테인먼트

문화라이프

마니아TV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