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안시현의 인기는 현재의 박인비나 박성현보다 뜨거웠다. 제2의 박세리라는 수식어도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안시현은 만19세의 나이로 미LPGA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린 뒤 곧바로 2004년 미LPGA투어 신인왕까지 거머쥐며 탄탄대로를 걷는듯했다. 그러나 너무나 밝게 빛났던 탔인지 금방 빛을 잃었다. '신데렐라'라는 동화의 주인공 이야기가 오버랩되기까지 했다.
안시현의 이후 삶은 녹록치 않았다. 결혼과 출산 등 평범한 여성의 삶을 살면서 투어생활을 이어갔지만 마음고생도 컸다. 아픔도 있었다. 그리고 한때 은퇴를 택하기도 했다. 유명했던 선수라는 이유로 안시현의 지난 10여년간의 삶은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다. 안시현의 입장에서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긴 세월을 견뎌야했다.
후배들과의 관계도 서먹했다. 직선적인 안시현은 다정다감한 성격이 아니다. KLPGA투어 후배 선수들은 "시현언니에게 다가가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까칠한' 안시현은 어려운 선배다. 상처가 많았던만큼 스스로 벽을 만드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팬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다. 올해 한 대회 때 일이다. 안시현이 경기 중 한 팬이 자신의 화난표정을 지적하는 소리를 들은 뒤 SNS계정에 이렇게 썼다. "선수마다 화났을때 표현하는 방식과 풀어가는 방법이 다 다르다. 포커페이스가 진정한 답이 아니다. 나도 참을 줄 안다. 그러나 그 방법은 나랑 맞지 않다. 당신이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라해서 내가 욕 먹을 이유는 없다.(이하 생략)"
이런 무서운 선배가 우승을 차지했다. 후배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안시현의 우승이 결정된 뒤 선수들은 잠시 망설였다. 프로골프대회에서 빠지지 않는 건 우승자에게 축하를 건네는 선수들의 모습이다. 최근 KLPGA투어에서 우승자에게는 선수들이 모여들어 꽃을 뿌려주곤했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무더위를 식혀줄 시원한 물이 뿌려졌다. 계획된 '작전'이었다. 미워서 꽃대신 물을 뿌린 건 아니다. 짖꿋은 장난이 때론 서먹한 관계를 풀어주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이 순간 안시현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후배들에겐 나름 찬스였던 셈이다. 그리고 안시현은 그 어느때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축하를 받았다.
안시현은 무려 12년만에 우승을 맛봤다. 그것도 한국여자오픈이라는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딸 그레이스를 위해 다시 또 도전한다는 그녀는 이제 다시 정상에 올랐다. 충격을 이겨내는 데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안시현의 롤러코스터 같았던 지난 10년. 너무 빨리 성공해 더 큰 아픔을 맛봐야했지만 결국 돌아왔다. 잊고 있었지만 '신데렐라'라는 동화는 해피엔딩이었다. '까칠한' 선배에게 축하인사를 핑계삼아 '과감'하게 물을 뿌린 후배들도 이제 선배 안시현에게 조금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길 바란다.
박태성 기자 photosketch@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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