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021] 왜 ‘파이팅 코리아’라고 말할까

김학수 기자| 승인 2024-02-11 08:10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단일팀 현정화(오른쪽) 이분희 등이 주축, 중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모습.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단일팀 현정화(오른쪽) 이분희 등이 주축, 중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모습.
탁구는 ‘파이팅 코리아’의 국제적 명성을 드높인 대표적인 구기종목이다.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구기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세계 제패의 쾌거를 이룩한 이후 세계 정상권 성적을 꾸준히 냄으로써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일깨워줬다. 1991년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구성된 남북 단일팀은 ‘만리장성’ 중국을 물리치고 단체전 정상에 올랐다. ‘파이팅 코리아’라는 구호는 ‘우리도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는 국민적 단합을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파이팅 코리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처음 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1964년 도쿄올림픽 때의 신문기사를 보면, 응원구호로서 ‘파이팅 코리아’라는 것이 등장했던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동아일보 1964년 10월 12일자에 수록된 ‘‘파이팅 코리아’, 관중들 우뢰의 응원‘제하의 기사에는 ‘우루과이와의 대전에서 일패도지한 한국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후 힘이 없는 모습으로 퇴장했는데 돌연 관중석에서 ‘파이팅 코리아’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소리가 너무나 큰 탓인지 관중석에는 어리둥절한 채 덩달아 박수로 호응해주었다”고 적고 있다. 동아일보 1964년 10월 14일자에는 ‘한국남자배구팀이 일본팀과 시합을 한 13일 요코하마 문화체육관에는 한국여자배구선수들이 ‘파이팅 코리아’를 소리높이 외치는가 하면, ‘송아지 송아지’라는 노래까지 합창하고 때로는 ‘3,3,7’박수를 보내어 빽빽이 들어찬 일본사람들을 어리둥절케 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사상 최대의 한국 선수단이 출전한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면서 썼던 것이다.
하지만 ‘파이팅’이라는 말은 그 이전부터 사용했다. 첫 시작은 조선시대 말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독립운동가 서재필이 발간한 독립신문 영문판인 ‘디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 1897년 2월 20일자에 수록된 석전(石戰, stone fight) 혹은 편전(便戰, 편싸움)을 더 이상 금지시키지 말 것을 주장하는 논설에 ‘파이팅 스피릿’이라는 말이 나온다. 기사는 ‘…… 돌로 하는 싸움은 일반 대중에게 위험하므로 석전은 엄격히 금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막대기로 하는 싸움이라면 왜 정부가 금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어떠한 이유도 우리는 찾아낼 수 없다. 물론 이들은 대중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빈 공터에서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다. 조선인들 사이에는 거의 ‘파이팅 스피릿(fighting spirit)’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각자에 의해 서로가 이러한 영향을 받고 있다. 설령 참가자들이 조금은 위험하더라도 이러한 종류의 스포츠는 장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파이팅 스피릿’은 간단하게는 ‘투지(鬪志)’를 말하며, 좀 더 그럴싸하게는 상무정신(尙武精神)과 같은 것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풀이할 수 있다.

원래 ‘파이팅’이라는 말은 국적불명의 용어이다. 민족문화연구소 이순우 책임 연구원이 쓴 '파이팅은 일제잔재인가?'에 따르면 영어권에서는 대개 응원구호로 “고 포 잇(Go for it!)”이라거나 “킵 잇 업(Keep it up!)” 정도의 말을 사용한다. 일본은 “간바레(がんばれ)” 또는 기껏 “화이토(ファイト; Fight)”라고 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알려진다. 따라서 “파이팅(Fighting!)”이라고 하는 경우에는 비록 영어식 표현이기는 하나 그 어느 나라에서도 그 뜻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 이 말이 일제잔재라는 얘기가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 항공특공대가 최후 출격을 앞두고 외치는 구호가 바로 ‘파이팅’이었기 때문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파이팅’에 대한 우리말 대체어로 ‘아자’라는 말을 사용하도록 유도한 적이 있었다. 한때 ‘아자 아자’라는 표현이 크게 부각되기도 했으나, ‘아자 아자 파이팅’의 형태로 회귀하는 바람에 이 시도는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한번 굳어진 언어습성을 고치기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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