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팅 코리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처음 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1964년 도쿄올림픽 때의 신문기사를 보면, 응원구호로서 ‘파이팅 코리아’라는 것이 등장했던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동아일보 1964년 10월 12일자에 수록된 ‘‘파이팅 코리아’, 관중들 우뢰의 응원‘제하의 기사에는 ‘우루과이와의 대전에서 일패도지한 한국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후 힘이 없는 모습으로 퇴장했는데 돌연 관중석에서 ‘파이팅 코리아’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소리가 너무나 큰 탓인지 관중석에는 어리둥절한 채 덩달아 박수로 호응해주었다”고 적고 있다. 동아일보 1964년 10월 14일자에는 ‘한국남자배구팀이 일본팀과 시합을 한 13일 요코하마 문화체육관에는 한국여자배구선수들이 ‘파이팅 코리아’를 소리높이 외치는가 하면, ‘송아지 송아지’라는 노래까지 합창하고 때로는 ‘3,3,7’박수를 보내어 빽빽이 들어찬 일본사람들을 어리둥절케 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사상 최대의 한국 선수단이 출전한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면서 썼던 것이다.
하지만 ‘파이팅’이라는 말은 그 이전부터 사용했다. 첫 시작은 조선시대 말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독립운동가 서재필이 발간한 독립신문 영문판인 ‘디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 1897년 2월 20일자에 수록된 석전(石戰, stone fight) 혹은 편전(便戰, 편싸움)을 더 이상 금지시키지 말 것을 주장하는 논설에 ‘파이팅 스피릿’이라는 말이 나온다. 기사는 ‘…… 돌로 하는 싸움은 일반 대중에게 위험하므로 석전은 엄격히 금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막대기로 하는 싸움이라면 왜 정부가 금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어떠한 이유도 우리는 찾아낼 수 없다. 물론 이들은 대중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빈 공터에서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다. 조선인들 사이에는 거의 ‘파이팅 스피릿(fighting spirit)’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각자에 의해 서로가 이러한 영향을 받고 있다. 설령 참가자들이 조금은 위험하더라도 이러한 종류의 스포츠는 장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파이팅 스피릿’은 간단하게는 ‘투지(鬪志)’를 말하며, 좀 더 그럴싸하게는 상무정신(尙武精神)과 같은 것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풀이할 수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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