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은 숫자 표기를 좋아한다. 8·15는 광복절을 의미하며, 6·25는 반미투쟁의 날을 의미한다. 10·10절은 조선노동당 창건일을 뜻한다. 4·15는 김일성 생일, 태양절을 의미하며, 2·16은 김정일 생일, 광명성절을 의미한다.
북한에서 숫자는 단순한 표식이 아니라 기억을 고정하는 장치이다. 북한이 숫자로 된 명칭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정치적 상징·역사적 사건·집단 기억을 강화하기 위한 체제적 전략과 깊이 관련돼 있다. 숫자를 개인이 아닌 국가의 시간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상징 코드로 활옹햐고 있는 것이다.
‘4·25’는 ‘4월 25일’을 뜻한다. 이 날짜는 북한이 조선인민군 창건일로 기념하는 날이다. 실제 조선인민군 창설일은 1948년 2월 8일인데, 김일성 정권은 항일 빨치산 시절(1932년 4월 25일) 김일성이 조직했다는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을 공식 창건일로 격상시켰다. 따라서 '4·25'는 단순한 날짜가 아니다. ‘김일성이 항일 무장투쟁을 시작한 날’, 곧 혁명무력의 탄생일로 신격화된 상징인 것이다.
‘4·25체육단’은 조선인민군 소속의 최고 수준 체육단체이다. 말하자면 군 체육단이다. 남한식으로 말하면 상무부대에 해당한다. 정식 명칭은 ‘조선인민군 4·25체육단’이지만 통상 ‘4·25체육단’이라 말한다. 우리의 국방부격인 인민무력성 소속으로 1947년 ‘조선인민군체육단’으로 출발했다가 이후 ‘4·25체육단’으로 개칭했다. 북한 체육의 중추적 엘리트 선수단, 군인 및 국방체육을 상징한다.
그동안 4·25체육단이 배출한 북한 선수들은 북한 체육의 역사의 주역들이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주역은 거의 전부가 4·25체육단에 속한 군인들이었다. ‘동양의 진주’ 박두익을 비롯해 주전 11명 가운데 리창수(압록상체육단), 김성국(낙랑체육단)을 제외한 대부분이 소속해 있었다. (본 코너 13회 ‘1966년 월드컵, 북한 축구 ‘사다리 전법’은 어디에서 유래했나‘, 1559회 ‘북한은 왜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을 스포츠 사상 최대 업적으로 내세울까’ 참조)
남한에선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서 김형욱 부장 주도로 축구 국가대표팀격인 ‘양지(陽地)’팀을 1967년 창단했다. 양지팀 명칭은 ‘음지(陰地)에서 일하며 양지((陽地)를 지향(指向)한다’는 중앙정보부 구호에서 따왔다. 당시 양지팀은 이회택, 이세연을 비롯해 사실상 국가대표 선수들로 구성됐다. 당시 한국 축구계 일각에서 “북한의 국가조직형 체육단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가 있었고, 중앙정보부가 이를 ‘체육의 안보화’ 논리로 양지팀을 창단한 셈이다. 국가 대표급 선수들의 군복무 대체 및 관리를 했던 양지팀은 1970년대 초반, 중앙정보부의 인사 개편 및 체육 정책 조정으로 해체됐다.
북한 노동신문은 2018년 4월25일자에서 “4·25체육단은 혁명무력의 체육단이며, 김일성-김정일주의 체육의 선봉이다”며 체육의 근원이 군사혁명 전통에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강조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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