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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577] 북한에서 신금단을 왜 ‘천리마 시대의 여걸’이라 부를까

2025-10-17 04:16:24

1964년 도쿄 올림픽 직전 하네다 공항에서 눈물로 아버지를 상봉한 북한 육상의 전설적 선수 신금단(가운데)
1964년 도쿄 올림픽 직전 하네다 공항에서 눈물로 아버지를 상봉한 북한 육상의 전설적 선수 신금단(가운데)
북한의 신금단(辛今丹)은 전설적 여성 육상 선수였다. 1960년대 중·장거리 달리기 분야에서 뛰어난 기록과 드라마틱한 이력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함경남도 리원 출신의 평범한 소녀였던 그녀는 200m, 400m, 800m 등에서 연이어 세계 최고 기록에 근접하는 성적을 냈다. 1963년 자카르타 신흥국 경기대회(GANEFO)에선 3관왕을 차지했다. 당시 평양과 자카르타 언론은 그녀를 ‘조선의 번개’라 불렀다. 세계가 인정하기 전에 체제가 먼저 그녀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기록은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에 의해 공인되지 않았다. 북한이 GANEFO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비공인 선수’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신금단 개인의 실력이 아닌 체제의 정치적 노선이 그녀의 국제무대 진출을 가로막은 셈이다.

1964년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신금단은 눈물로 아버지를 만났다. 1950년 6·25 전쟁이후 부녀가 헤어진 뒤 14년 만의 상봉이었다. 그러나 그 만남은 7분에 불과했다. 일본 입국을 거부당한 북한 대표단은 그대로 평양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꿈꾸던 올림픽 트랙은 끝내 밟지 못했다. 신금단의 이름은 분단의 상처 위에 새겨졌다.
신금단은 북한이 자랑한 ‘천리마 시대의 여걸’이었다. ‘천리마(千里馬)’는 문자 그대로 하루에 천 리를 달릴 수 있는 말을 뜻한다. 중국 고전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사기(史記) 열전(列傳)’ 중 ‘백락(伯樂) 열전’에 처음 등장한다. 백락은 말을 잘 알아보는 인물로, 그가 발견한 ‘천리마’는 보통 말과 달리 잠재된 능력을 가진 명마였다. 여기서 ‘천리마’는 숨은 인재,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사람의 비유로 쓰이게 됐다.

북한은 고전적 의미를 사회주의식으로 재해석했다. 1956년 김일성이 ‘천리마 운동’을 제창하면서, 천리마는 자력갱생과 초인적 생산정신의 상징으로 변모했다. 당시 ‘천리마를 탄 노동자’는 하루 일을 열흘 치로 해내는 혁명적 근로자상으로 미화됐다. 이후 천리마 제철소, 천리마 체육단, 천리마상(賞) 등 각종 명칭에 이 단어가 붙으면서, 북한 사회주의 근대화의 대표 상징이 됐다. 고대 중국에선 ‘잠재된 인재’를 뜻했지만, 북한에서는 ‘사회주의적 근로영웅’을 뜻하는 정치적 상징어로 바뀐 셈이다. 오늘날 ‘천리마’는 북한식 동원 체제의 뿌리를 보여주는 단어로, 근면·충성·헌신의 이데올로기를 함축한 시대적 표상이 됐다.

북한은 당시 체육에서 영웅으로 떠오른 신금단에게 이 천리마라는 칭호를 붙여 ‘천리마 시대의 여걸’로 미화했다. 가난한 배경에서 사회주의 체제 하의 노동자·학생 생활과 체육 활동을 병행하면서 ‘노동자 속의 영웅’ 이미지로 형상화되었다는 해석이다. 천리마처럼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투혼의 상징으로 삼았던 것이다.

북한은 이후 신금단을 ‘인민체육인’으로 기리고, 사회주의 여성의 표상으로 내세웠다. 그녀의 이야기는 ‘김일성의 딸처럼 당을 위해 달린 여인’으로 각색됐다. 하지만 실제 신금단의 삶은 국가의 서사 속에서 사라졌다. 훈장을 받고 영웅이 되었지만, 개인의 서러움과 꿈은 기록되지 않았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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