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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16] 북한 축구에서 ‘돌파’를 왜 ‘따돌리가’라고 말할까

2025-11-27 06:19:32

 2024년 한국과 북한의 U-20 여자 아시안컵 준결승전 모습
2024년 한국과 북한의 U-20 여자 아시안컵 준결승전 모습
‘페네트레이션(Penetration)’은 스포츠에서 수비 진영을 뚫고 안쪽 공간으로 파고드는 모든 움직임을 뜻한다. 단순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수비 라인을 무너뜨리고 유리한 지역에 진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축구와 농구 등에서는 빠르게 드리블을 통해 들어가는 방법이다.

원래 이 말은 침투, 돌파라는 의미인 라틴어 ‘Penetratio’를 거쳐 영어로 넘어온 용어이다. 16세기 침투라는 의미와 함께 통찰력, 판단력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게 됐다. 군사용어로 적의 방어진지를 뚫고 들어가 적을 격파해 목표를 탈취하는 공격기동의 한 형태로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본 코너 534회 ‘페네트레이션(Penetration)은 배구에서 어떤 의미일까’ 참조)

우리나라 스포츠에선 페네트레이션을 일본식 한자어로 ‘돌파(突破)’라고 말하며, 북한에선 순우리말로 ‘따돌리기’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언론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 일제강점기부터 ‘돌파’라는 말을 스포츠 기사에서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3년 8월10일자 ‘연합축구대회결승전(聯合蹴球大會决勝戰)’ 기사는 ‘오군연합축구대회(五郡聯合蹴球大會)는 예정(預定)과갓치 팔월오일오전십시삼십분(八月五日午前十時三十分)부터 광주공립보통학교광장(廣州公立普通學校廣塲)에셔 개최(開催)되얏는대 여주(驪州),양평양군(楊平兩郡)에셔는 요수(潦水)에인(因)하야 교통관계(交通關係)로 참가(參加)치못하얏스나 용인(龍仁),이천(利川),광주(廣州)는 팔월사일오전십이시(八月四日午前十二時)부터 모여들기를 시작(始作)하야 익일오전십시(翌日午前十時)에 지(至)하야는 각단체(各團體)의 입장식(入場式)과 작전준비(作戰準備)를거행(擧行)한후 정각(後定刻)이됨매 작전순서(作戰順序)에의(依)하야 광주대용인(廣州對龍仁),용인대이천(龍仁對利川)의차제(次第)로개전(開戰)되얏스며 당일(當日)은 적(適)히 일기(日氣)가청명(晴明)하야 지리(支離)하던 요염(潦炎)에 끽고(喫苦)하던 동포(同胞)들은 운집(雲集)하는 수천관중(數千觀衆)의 갈판응원하(喝釆應援下)에 각군(各軍)의원기(元氣)는 점(漸)々왕성(旺盛)하야 장내(場內)는 파(頗)히긴 장(緊張)하게되얏는대 최후(最後)에는용 인군(龍仁軍)이 연전연승(連戰連勝)의 최우승(最優勝)의기세(氣勢)로수(遂)히 진문(陣門)을 돌파(突破)케되야 영광(榮光)스러운 우승기(優勝旗)를 점령(占領)하얏스며 오후육시(午後六時)에지(至)하야는 각군(各軍)의 푸레이소래로 폐회(閉會)되얏더라(광주(廣州))’고 전했다. 여기서의 ‘진문(陣門)을 돌파케 되야’는 ‘상대 수비 조직을 무너뜨리고 득점 기회를 완성했다’는 의미로, 당시 축구 보도에서 돌파는 전투적 은유로 쓰였다. 오늘날 ‘페네트레이션’과 유사한 의미이다.
북한에서 우리 고유어 ‘따돌리기’로 말하는 것은 단순한 번역이나 언어 미감의 문제를 넘어, 체제가 추구한 언어관의 방향을 압축한다. 북한은 해방 직후부터 외래어와 일본식 한자어를 적극적으로 제거하고 ‘조선말 다듬기’ 운동을 통해 순우리말 중심의 신어를 대량 생산했다. 스포츠 분야는 그 실험이 가장 활발히 진행된 영역이었다. ‘패스’는 ‘넘겨주기’, ‘드리블’은 ‘몰기’, ‘슈팅’은 ‘차넣기’ 혹은 ‘던져넣기’로 바뀌었다. 기술 용어를 그대로 음차하거나 한자어로 번역하지 않고, 해당 기술의 동작과 효과를 고유어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본 코너 1609회 ‘북한 축구에선 왜 ‘롱패스’를 ‘긴공연락’이라 말할까‘, 1615회 ’북한에선 왜 ‘드리블’을 ‘몰고달리기’라고 말할까‘ 참조)

‘따돌리기’ 또한 같은 원리에서 만들어졌다. 돌파는 상대를 속이고 앞으로 파고드는 행위다. 북한은 이 기술의 핵심을 ‘상대를 벗어난다’는 동작으로 보았고, 이를 가장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고유어 ‘따돌리다’를 기술명으로 채택했다. 기능 중심 명명법이다. 단어에 담아야 할 것은 원래 외래어의 음이 아니라, 동작이 만들어내는 효과라는 판단이 작동했던 것이다.

그러나 ‘따돌리기’에는 단순한 기능 묘사 이상의 의미가 얹혀 있다. 북한 스포츠 담론에서 ‘상대를 따돌리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행위는 개인의 폭발적 돌파가 아니라, 집단 공격을 위한 길을 여는 ‘기동’으로 설명된다. 선수의 개인 재능보다 집단을 위한 판단과 역할이 부각되는 구조다. 그래서 북한 매체는 “선수가 방어수를 하나둘 따돌리며 문전으로 침투하였다”와 같은 문장을 반복한다. 돌파가 아니라 따돌리기일 때, 기술은 집단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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