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 ‘out’는 고대 게르만어군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고대 영어 ‘ūt’에서 유래했다. 기본적으로 “경계 바깥으로 벗어남”**을 뜻하는 말이었다. 스포츠 용어로는 서양 중세시대부터 써왔던 말이며, 야구보다 훨씬 오래된 크리켓에서 타자가 규칙 위반 혹은 득점 실패로 ‘퇴장되는’ 상황을 이미 18세기 문헌에서 “the batsman is out”이라고 표현했다. 크리켓 규칙을 상당 부분 계승한 야구는 1845년 미국야구 규칙서인 뉴욕 니커보커 클럽 규칙에 ‘out’을 규칙 용어로 표준화했다. (본 코너 202회 ‘스트라이크 아웃을 왜 ‘삼진(三振)‘이라고 했을까’ 참조)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아웃이라는 말을 썼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2년 12월10일자 ‘조선일보사급각단체후원하(朝鮮日報社及各團體後援下)에 용장맹사(勇將猛士)의전투(戰鬪)’ 기사는 ‘량군의 선수들은 서로 악수를 한후 즉시 경기를시작하게되야 몬져 미국직업야구단이 수비를 하게되얏스며 우리의 전조선군은 빼ㅅ틩을들고 나오게되얏다 쳐음으로 젼조선군의 샌터 마춘식군이 나스며「히트」를치자 수비에 능란한 미군측에셔는 즉시 하잇뽀ㄹ을 밧게되야 무참하게나 쳐음갈긴 뽀ㄹ이 져들의 수즁에 드러가자 마군은 아웃이되고 말앗다 그후에 박텬병군이 다시 홈으련을 게획하고 뻬쓰에 나왓스나 미군의 피쳐로 유명한 편낙크군의 능란한뽀ㄹ을 갈기얏스나 산싱으로그만죽게되얏다 이와갓치 운리의젼조선군들은 의긔를 분발하야 빼ㅅ틔ㅇ을들고싸오고자 하얏스나 한점도엇지못하고 노홈을당하게되얏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초창기 조선팀과 미군팀의 야구 경기 보도인데, 첫 타자로 조선군의 센터(중견수) 마춘식 선수가 첫 타석에서 ‘히트’를 날리자, 수비에 능한 미군 팀이 재빨리 공을 잡아 ‘무참이 아웃’으로 처리했다는 내용이다. (본 코너 1614회 ‘북한 축구에선 왜 ‘아웃’을 ‘공밖’이라 말할까‘ 참조)
여기에 북한 특유의 ‘규칙·자격 중심’ 스포츠 이해 방식이 더해졌다. 사회주의 체육 이론에서는 운동선수가 경기 중 행사하는 권리를 강조하며, 규정을 충족하지 못하면 ‘권리 상실’로 봤다. 타자가 아웃되는 순간도 단순히 플레이가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타격권을 잃는 행위”로 설명했다. 북한의 체육사전이 “타자가 기능 수행권을 잃으면 실격 처리한다”고 정의한 것도 이러한 사상적 토대에서 비롯된다. 북한식 야구 용어는 규율·자격·기능을 기준으로 배열돼 있으며, ‘아웃’을 ‘실격’이라고 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북한 야구에선 두 사람이 동시에 아웃되는 상황인 ‘병살’을 ‘이중실격’, 세 사람이 동시에 아웃되는 상황인 ‘트리플플레이’를 ‘삼중실격’이라고 말한다.
북한은 1960~70년대에 ‘조국어 순화’를 내세워 영어·일본어에서 온 스포츠 외래어를 대부분 제거했다. 남한에서는 아웃, 세이프, 스트라이크 같은 음차어가 그대로 표준이 되었지만, 북한에서는 모두 다른 말로 바뀌었다. 세이프는 ‘안전’, 스트라이크는 ‘쳐내기 실패’, 인터벌은 ‘쉬임’으로 전환됐다. 외래어 대신 규범적이고 ‘국가적’ 색채가 강한 한자어를 선호한 것이다. 그 결과 가장 무난하고 ‘체제 친화적’인 단어가 바로 실격인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관련기사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