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70년대 한국여자배구는 일본여자배구의 신화적 존재였던 다이마쓰 히로부미(大松博文·1921-1978)의 지도를 받아 성장했다. 다이마쓰 감독은 배구가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64년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결승에서 당대 최강 소련을 물리치고 일본에 금메달을 안겼다. 일본은 신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다이마쓰 감독이 직접 개발한 신기술 ‘회전 리시브’와 ‘시간차 공격’, 찰흙같은 조직력으로 힘과 파워가 뛰어난 구라파 선수들을 제압했다. 다이마쓰 감독의 탁월한 지도력에 탄복한 한국여자배구는 그를 기회가 날 때마다 초청, 대표팀의 전력 강화를 도모했다. 일본을 넘어서기 위해선 일본의 명장을 빌려온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인 것이다.
한국남자배구도 1972년 북한과의 뮌헨올림픽 본선 진출전을 위해 일본남자배구의 대부 마쓰다이라 야스타카(松平康隆·1930-2011)의 지도를 받았다. 마쓰다이라는 1968년 멕시코올림픽 은메달, 1972년 뮌헨올림픽 금메달을 이끈 일본대표팀 감독 출신이었다. 선수출신인 그는 “일본은 체격으로 세계 최고의 팀이 될 수는 없지만 운동능력과 기술력으로는 최고의 팀이 될 수 있다”며 대표팀을 이끌어 소련, 동독, 폴란드 등을 꺾고 세계 정상을 차지했다.
한국 여자배구는 몬트리올 영광이후 그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출전 8개국 가운데 최하위에 처졌고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큰 충격을 주었다. 그나마 20년 넘게 올림픽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남자에 비해서 꾸준히 올림픽 본선에는 출전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슈퍼 스타’ 김연경을 앞세워 36년만의 동메달에 도전했지만 숙적 일본에 막혀 아쉽게 4위에 머물렀다.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놓고 겨룬 한국과 일본은 앞으로도 보기 힘든 데스매치였다. 한국은 세계랭킹 1위 미국에게 패하고, 일본은 세계랭킹 2위 브라질에게 각각 준결승에서 패하며 맞붙게 됐다. 한국은 당시 일본에 비해 전력이 뒤져 있었다. 한국은 김연경을 제외하고 대부분 공격이 일본 수비에 막히며 0-3으로 완패를 당했다. 하지만 한국여자배구는 4년 뒤 2016년 리우올림픽 예선전에서 김연경의 대활약에 힘입어 일본을 3-1로 물리치고 런던올림픽에서의 패배를 설욕했다.
한국남자배구는 1964년 도쿄올림픽부터 총 8번 올림픽에 출전했다. 최고 성적은 1984년 LA올림픽 4위였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이후 20년간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하고 세계배구 변방으로 밀려났다. 일본 남자배구도 1972년 뮌헨올림픽 금메달 이후 세계 강호대열에서 밀려나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 이후 한국과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비슷한 실력으로 자웅을 겨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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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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