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569] 태권도에서 왜 ‘격파(擊破)’리고 말할까

김학수 기자| 승인 2021-12-02 10:41
세계태권도연맹 시범단이 프랑스 TV 방송에서 고난이도의 격파시범을 선보이고 있다. [세계태권도연맹 제공]
세계태권도연맹 시범단이 프랑스 TV 방송에서 고난이도의 격파시범을 선보이고 있다. [세계태권도연맹 제공]
최근 태권도를 처음 배우는 외국인 아이의 깜찍한 격파 장면을 소개하는 1분55초짜리 짧은 유튜브 동영상을 봤다. 영상에서 사범이 3살짜리 아이에게 발로 격파하는 기본 동작을 먼저 시범으로 가르쳤다. 이어 오른발로 내리찍기 동작을 3번 정도 연속적으로 하게 한 뒤 벽돌 위에 올린 얇은 송판을 깨뜨리도록 했다. 아이는 ‘아얏!’하는 구호와 함께 벽돌위로 두 발을 딛고 올라섰다. 사범의 설명과는 다르게 천진난만하게 그냥 송판위로 올라갔 것이다. 송판은 당연히 깨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사범은 두 발이 아닌 한 발로 하라고 다시 얘기한 뒤 격파를 하도록 얘기했다. 아이는 다시 오른발을 송판 가운데가 아닌 오른쪽 한쪽 부분으로만 내리찍었다. 송판은 또 깨지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한 사범은 가운데를 내리치라고 반복적으로 얘기했다. 아이는 그제서야 사범의 말대로 오른발로 송판 한 가운데를 쳤다. 이윽고 송판이 깨졌다. 이를 지켜 본 주위 수련생들은 ‘와’하고 크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이 장면은 태권도 격파 시범을 소개하는 유명한 동영상으로 조회수가 6천만이 넘었다. 원래 태권도 격파는 기술에 능하지 않은 초보자에게는 가르치지 않지만 필요에 따라선 어린애들에게 태권도에 흥미를 갖도록 하기 위해 기초적인 격파 시범을 하게 한다. 국내 어린이 태권도 도장은 물론 전 세계 각지에 있는 태권도 도장에서 이런 모습들은 낯익은 장면이다.
격파는 태권도 기술로 물체를 쳐서 깨뜨리는 수련 방법의 하나이다. 벽돌이나 기왓장, 송판 등을 맨손이나 발, 머리 등으로 쳐서 깨는 방법이다. 격파라는 말은 한자어이다. ‘칠 격(擊)’과 ‘깨뜨릴 파(破)’가 합성된 말로 타격으로 사물을 쳐서 부러뜨리는 행위를 뜻한다. 한국, 일본, 중국 등 한자 문화권 국가에서 오래전부터 쓰던 단어이다. 격파는 원래 군사적인 용어로 많이 사용한다. 차량이나 함선, 비행기 등의 무기를 공격하여 전투 불능 상태로 하는 것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인다.

또 격파는 태권도를 비롯 극진 가라테 같은 타격 무술이나 국선도 같은 기공 계열이나 기합술이라고도 불리우는 차력 등에서 많이 선보인다. 격파하는 물건은 주로 나무 송판, 기와, 벽돌, 대리석 등이 쓰인다. 태권도 격파의 종류는 비교적 단순한 기술을 사용하는 위력 격파와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면서 기예를 선보이는 기술 격파가 있다. 위력 격파에서는 주먹 지르기ㆍ손날치기ㆍ옆차기 등의 기술을 사용하고, 기술 격파에서는 연속 뒤 후려차기ㆍ뛰어 돌아 넘어 2단 차기ㆍ높이 뛰어차기 등의 기술을 선보인다.

태권도는 오래전부터 격파를 대내외적으로 태권도를 알리는 방법으로 활용했다. 특히 1960년대부터 태권도가 해외로 전파하면서 격파 시범은 태권도의 매력과 관심을 끄는 주요한 수단이었다. 세계 각국으로 보급된 태권도는 해외 사범들이 맨손으로 송판, 벽돌 및 기왓장을 격파하는 묘기를 선보이며 태권도의 강점과 우수성을 알렸다. 해외에서 태권도 격파시범을 보여준 초창기 태권도의 모습은 1969년 5월13일자 조선일보 기사 보도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기사는 ‘한국 태권사범에 훈장’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태권도 사범들이 구엔 반티우 대통령의 경호원들에게 일발필살의 태권도를 가르쳐왔음이 10일 밝혀졌다. 25명의 경호원들은 이날 맨발과 맨손으로 송판,벽돌및 기왓장을격파,그동안 쌓은묘기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태권도의 정상을 의미하는 유단자의 흑산(黒山)가 수여됐다. 대통령(大統領)비서실장 구엔반 후옹씨는 한국인(韓国人) 사범단장 김봉식 중령(金鳳植中領)과 3명의 사범들에게 월남심리전(越南心理戦)훈장을 수여했다’라고 보도했다. 이후 태권도 격파시범은 처음으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86서울아시안게임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 등 각종 국제스포츠행사와 문화행사 등에서 세계태권도연맹 시범단을 통해 많이 선보였다. 올해 9월 미국 NBC의 인기 예능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선 끝까지 우승을 겨룬 세계태권도연맹(WT) 태권도 시범단이 화려한 격파 등을 눈앞에서 선보이자 현장을 찾은 사람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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