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673] 왜 ‘경보(競步)’라고 말할까

김학수 기자| 승인 2022-04-15 07:39
2020 도쿄올림픽 육상 경보 남자 50km 경기모습. 가운데는 올림픽 8회 연속 출전한 스페인의 헤수스 앙헬 가르시아.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2020 도쿄올림픽 육상 경보 남자 50km 경기모습. 가운데는 올림픽 8회 연속 출전한 스페인의 헤수스 앙헬 가르시아.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육상 도로경기의 하나인 경보를 처음 보는 이들은 ‘이상한 종목’이라고 여긴다. 펭귄처럼 뒤뚱뒤뚱하며 걷는 모습 때문이다. 아직 사회 생활에 적응하지 않은 어린이들은 경보 경기에서 이상하게 걷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경보는 관심이 덜한 육상 종목 가운데서도 더욱 주목을 받지 못한다. 경보 선수들의 경기력이 특히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다르다. 멕시코에서는 경보가 인기 종목이다. 1984년 LA올림픽에서 20km 금과 은, 50km 금메달을 휩쓸었다. 경보는 나라마다 경기 환경과 관점에 따라 인기 종목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보는 걷는 경기를 뜻하는 영어 ‘walking race’의 번역어이다. ‘다툴 경(競)’과 ‘걸음 보(步)’가 결합한 말이다. 걸음으로 다툰다는 뜻이다. 경보는 정확히 얘기하면 한 쪽 발이 땅에 닿기 전에 다른 발이 땅에 닿게 하여 빨리 걷는 경기이다. 다툰다는 뜻인 ‘경’자를 쓴 것은 경기라는 말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경기(競技)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특정 기술을 경쟁한다는 일본식 한자어이다. 경기는 경쟁한다는 영어 동사 ‘Compete’의 명사 ‘Competition’의 번역어이다. 일본어에서는 한자어 '경기'를 쓰기도 하지만 가타카나 표현으로 영어 발음을 그대로 쓰기도 한다.(본 코너 666회 ‘육상경기에서 ‘경기(競技)’라는 말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참조)

경보라는 말은 2008년 런던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경기가 되면서 ‘walking race’의 번역어로 일본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 처음 올림픽 선수단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일본 육상계는 영어로 된 육상 종목을 번역하면서 걷는 경기라는 영어 단어에 착안해 경보라는 말을 쓰게됐다는 생각이다.

경보라는 말은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로 넘어왔다. 언론사 디지털 아카이브를 검색해보면 1929년 동아일보, 조선일보에 육상에서 경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동아일보 1929년 3월29일자 ‘육상경기규칙(陸上競技規則)’ 기사에서 ‘全日本陸上聯盟(전일본육상연맹)에서 今年(금년)부터 競技規則(경기규칙)의 改正(개정)을 發表(발표)하얏는데’라며 6천m 릴레이 경보 종목이 새로운 기록종목으로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경보의 기원에 대해선 로마시대의 군사 훈련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영국 귀족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던 산책이 경기화했다는 설도 있다. 경보가 올림픽 경기가 된 것은 1906년 아테네에서 열린 중간 올림픽에서 남자종목이 열리면서부터였다. 정식 종목은 2008년 런던올림픽에서부터 열렸다. 처음에는 트랙 종목이었지만,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도로경기(50㎞)가 됐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20㎞ 종목이 추가됐다. 여자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10㎞ 종목이 시작됐으며,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20㎞로 연장됐다.
경보는 육상 경기에서 ‘가장 가혹한 종목’으로 알려져 있다. 걷는 거리가 길어지면서 많은 체력 소모 때문에 큰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경기 규칙도 까다롭다. 경기자가 스텝을 하는 동안 지면에 닿아있는 다리의 무릎관절은 곧게 뻗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우뚱거리며 걷는 것처럼 보이는 기본 자세로 인해 처음 경보를 보는 이들은 신기한 표정으로 관심을 갖는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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