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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18] 북한 축구에서 왜 ‘태클’을 ‘공빼앗기’라고 말할까

2025-11-29 09:48:36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경기에서 한국 선수의 태클을 피하는 북한 선수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경기에서 한국 선수의 태클을 피하는 북한 선수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축구에서 태클(tackle)은 가장 역동적인 장면 중 하나다. 상대 공격수를 압박해 공을 탈취하는 순간, 경기의 흐름이 뒤집히기도 한다. 남한에서는 당연히 ‘태클’이라고 부르지만, 북한에서는 이 동작을 ‘공빼앗기’라 한다. 처음 듣는 이에게는 어딘가 투박한 표현처럼 보이지만, 이 명칭 속에는 북한 언어정책의 뿌리 깊은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어용어사전에 따르면 ‘tackle’은 중세 네덜란드와 중세 독일어에서 유래했다. 쥐다, 붙잡다는 뜻을 가진 ‘tak’, ‘tska’가 어근이다. 이 말이 13세기 중세 영어 ‘takel’로 들어왔다. 19세기 영국 공립학교에서 스포츠 용어로 태클이 본격 사용됐다. 태클은 원래 ‘붙잡다’는 뜻에서 출발해, 스포츠에서는 상대의 진행을 막고 공을 차지하기 위한 방어 행위를 뜻하게 됐다. 특히 영국에서 발전한 구기 종목(축구, 럭비, 미식축구)에서 널리 쓰이며, 경기 규칙에 따라 형태는 달라도 기본 의미는 ‘막고, 빼앗는 것’이다. (본 코너 1483회 ‘왜 태클이라 말할까’ 참조)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태클이라는 말을 썼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37년 12월7일자 ‘럭비—경기(競技)에 중요(重要)한규칙개정(規則改正)’ 기사는 ‘일본(日本)럭비—협회(協會)에서는 지난달입팔일(廿八日) 협회본부(協會本部)에서 규칙위원회(規則委員會)를개최(開催)하고 목하관동지방(目下關東地方)과 관서지방(關西地方)에서 견해(見解)를달리하고잇는『택클』된 선수(選手)의 프레이 와『라인아웃』의『드로—인』의두가지규칙개정(規則攺正)에 관(關)하야 토의(討議)를거듭한결과(結果) 전자(前者)에대(對)하야서는현재관서측(現在關西側)에서 행(行)하고잇는『레프링』을채용(採用)하기로되여 근일중(近日中)에 관동측(關東側) 럭비 관계자(關係者)에대(對)하야 이뜻을통달(通達)하기로된바 이두가지규칙개정(規則攺正)은 모두시합중(試合中)에뽈의 동작(動作)이중지(中止)되여 시합(試合)의진행(進行)이중단(中斷)되는것을 방지(防止)하야 어느정도(程度)까지『스무—스』하게 경기(競技)를 진행(進行)하는 정신(精神)아래 개정(攺正)되엿다한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태클(택클)’이라는 영어식 스포츠 용어가 이미 1930년대 조선 언론에서 자연스럽게 쓰였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당시 기자들은 일본 럭비·축구 협회 자료를 참고했고, 일본어 표기에서 가져온 영어식 용어를 그대로 음차해 기사에 실었다.
이 기사를 통해 일제 강점기 스포츠기사의 언어적 감수성이 이미 현대 한국어의 외래어 표준과 놀라울 정도로 가깝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곧 한국 스포츠 문화의 기초가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와 비교하면 북한의 선택은 독특하다. 북한은 1960년대 이후 ‘말다듬기’ 정책을 통해 외래어를 철저히 배제했고, 그 결과 태클은 ‘공빼앗기’, 드리블은 ‘몰기’, 패스는 ‘넘기기’ 같은 의미 직설화 용어 체계가 자리 잡았다. 남한은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진 영어식 스포츠 용어의 연속성을 유지한 반면, 북한은 이를 전면 부정하고 고유화한 셈이다. (본 코너 1615회 '북한에선 왜 ‘드리블’을 ‘몰고달리기’라고 말할까' 참조)

‘공빼앗기’라는 명칭에는 북한식 언어관의 가장 중요한 두 축이 담겨 있다. 하나는 외래어 배격이다. 서구 스포츠 문화가 유입되며 자연스레 자리 잡은 영어식 용어들을 북한은 체계적으로 제거했다. 다른 하나는 의미의 투명성이다. 전문용어보다는 누구나 듣자마자 이해할 수 있는 직설적 표현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기술적 세분화를 담아내기보다는, 그 행동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를 가장 단순한 단어로 드러내는 방식이다. (본 코너 1581회 '북한은 문화어에서 스포츠 용어를 어떻게 바꾸었나' 참조)

물론 ‘태클’이라는 단어는 국제 축구 규칙에서 세분화된 기술적 의미를 가진다. 스탠딩 태클과 슬라이딩 태클, 합법적 태클과 파울을 가르는 기준이 모두 ‘태클’이라는 하나의 틀 안에 정리된다. 그러나 북한의 ‘공빼앗기’는 이러한 복잡성을 걷어내고 “상대에게서 공을 되찾는 행동”이라는 목적만 남긴다. 기술적 전문성과 단순한 생활어 사이의 간극이 그대로 드러나는 지점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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