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북한 노동당 창건 78주년 기념 남자 배구경기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205043225048405e8e9410871751248331.jpg&nmt=19)
dig는 고대 영어 ‘dician’ 또는 ‘dic’가 어원이다. 중세 영어 ‘Diggen’을 거쳐 현대 영어로 변환됐다. 인터넷 메리엄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13세기 동사형으로 쓰이기 시작했으며, 1797년 명사형으로 ‘땅 파는 사람’ , ‘땅 파는 도구’ 등의 의미를 갖게 됐다. 미국 야구 초창기 시절부터 디그라는 말을 썼다. 폴 딕슨의 ‘딕슨 야구사전’에 의하면 디그는 1901년 배트로 맞은 볼을 잡는 것을 말한다. 특히 흙 속에서 튀는 잡기 어려운 공을 성공적으로 처리하는 경우에 디그라는 말을 사용했다. 디그는 야구 용어로 열심히 경기를 한다는 의미로도 썼다. 예를들어 체구가 큰 홈런왕 베이브 루스가 전력질주해 1루 세이프에 성공할 때, ‘Dig Down’이라고 1918년 미국 보스턴 아메리칸지가 보도했다. 아래로 잘 파고 들었다는 의미로 세이프에 성공했다는 말이었다. 커브볼의 변화를 말할 때도 디그라는 말을 명사형으로 쓴다. 미국 대륙의 한 가운데 위치한 고산지대 덴버에선 공기가 지대가 낮은 다른 지역보다 부족해 커브볼이 잘 안드는데, 이런 상황에 디그라는 용어를 붙여 말한다.
초기 배구 영어 문헌에서도 디그는 일반적인 리시브(receive)와 구분되는 표현이었다. 리시브는 서브를 안정적으로 받는 것을 말하며, 디그는 강타를 몸 아래에서 건져 올리는 것을 말한다. 디그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은 보통 서브보다는 잡기 어려운 상대의 스파이크 공격을 처리할 때를 구별하기 위한 때문이었다. 디그는 정상적인 서브 리시브보다 자세를 낮게 잡고 처리해야 한다. 이런 볼을 처리하는 수비 선수 자세가 마치 구멍을 파는 동작을 닮은 것처럼 보여서 이 말을 쓰게 됐다는 설이 알려져 있다. (본 코너 472회 ‘왜 디그(Dig)를 리셉션(Reception)과 구분해 말할까’ 참조)
‘강타 받아내기’, ‘낮은 공 받아치기’, ‘몸으로 걷어 올리기’처럼 순우리말·설명형 표현이 주로 쓰였다. 이 시기엔 디그라는 용어 자체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디그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1970년대 후반 이후로 보인다. 국제배구연맹(FIVB) 규칙·코칭 용어의 직접 유입되고 일본·미국식 배구 이론 번역 확대되면서이다. 이 과정에서 서비 리스브와 디그가 명확히 분리된 기술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북한 배구에선 디그를 ‘건져올리기’라고 부른다. ‘건지다’라는 말에는 물속이나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사라질 뻔한 것을 살려낸다는 의미가 동시에 담겨 있다. 남한에서 디그가 하나의 기술 코드로 통용된다면, 북한의 건져올리기는 장면을 설명하는 문장에 가깝다. 전자는 기능을 말하고, 후자는 이야기를 전한다.
북한 체육 용어의 특징은 동작 중심, 서사 중심이다. 기술을 추상적 명칭으로 고정하기보다, 선수의 몸짓과 상황을 언어로 설명한다. 건져올리기는 수비의 성공 여부만이 아니라, 그 순간의 절박함과 노동성을 함께 드러낸다. 이는 스포츠를 기록의 경쟁이 아니라 집단적 노력과 과정의 산물로 바라보는 인식과도 맞닿아 있다. (본 코너 1600회 ‘사회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스포츠 언어’ 참조)
결국 건져올리기라는 표현 속에는 공 하나를 살리기 위해 몸을 던지는 선수의 자세, 그리고 그 행위를 가치 있게 바라보는 언어의 철학이 함께 담겨 있다. 배구는 코트 위에서만이 아니라, 말 속에서도 이렇게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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