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전후(戰後) 배구 강국이었다. 여자배구는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남자배구는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정상에 올랐다. 일본은 국제배구연맹(FIVB) 전술·기술 용어를 가장 먼저 체계적으로 번역·정리한 나라 중 하나이다. 일본식 배구 용어가 등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열린다는 의미의 영어 형용사 ‘open’을 음차해 ‘오오픈(オープン)’이라 불렀으며, 공격을 의마하는 명사 ‘attack’을 한자어 ‘공격(攻撃)’으로 의역해 불렀다. 이 표현은 일본배구협회(JVA) 교본, 고교·대학 배구 지도서, NHK 중계 해설 등을 통해 표준 용어로 굳어졌다. 중요한 점은, 일본은 “개념어는 영어 음차, 행위는 한자어”라는 스포츠 번역 관행을 확립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언론은 1960년대부터 오픈공격이라는 말을 썼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69년10월1일자 ‘MBC배(盃) 배구(排球) 남자해군(男子海軍)—여자산은(女子産銀) 패권(覇権)’ 기사는 ‘산은(産銀)은 30일 장충체육관에서 폐막된 제1회MBC배(盃)쟁탈실업배구리그 마지막날여자부에서 라이뻘동일방(東一紡)을 3대0스트레이트로 물리처4전전승으로 금년3차리그에이어 두번째우승을 차지했다. 남자부 해군(海軍)은 최종옥구성삼(崔宗玉具星三)이 대각을 이룬 오픈 공격이 주효,팀워크가헝크러진 보안사(保安司)를 3대1로 격파,3승1패의 전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해군(海軍)과 동율인 보안사(保安司)는득실(得失)세트솔(率)에 의해 2위가됐다’고 전했다.
북한 배구에선 오픈 공격을 ‘열린 공격’ 또는 ‘열린 강타’라고 부른다. 여기서 ‘열린’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공이 높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블로커의 압박이 덜한 상태, 공격수가 충분한 준비 동작을 취할 수 있는 상황, 다시 말해 공격 조건이 열려 있는 상태를 포괄한다. 이는 ‘open’이라는 영어 단어가 지닌 의미를 음차가 아닌 의미 번역으로 풀어낸 결과다. 북한식 표현이 오히려 개념의 핵심을 더 분명히 드러낸다고 볼 수도 있다.
북한 스포츠 용어의 핵심 원칙은 명확하다. 외래어의 음을 빌리지 않고, 기술의 본질과 동작을 설명하는 말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스파이크’가 ‘강타’, ‘서브’가 ‘넣기’, ‘네트 터치’가 ‘그물접촉’으로 바뀌는 것처럼, ‘오픈 공격’ 역시 영어 표현을 그대로 옮기지 않는다. ‘열리다’라는 우리말을 통해 공간과 시간의 여유가 확보된 공격 상황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본 코너 1671회 ‘북한 배구에선 왜 ‘네트 터치’를 ‘그물접촉’이라 말할까‘, 1681회 ’북한 배구에서 왜 '서브'를 '넣기'라고 말할까‘, 1682회 ‘북한 배구에서 왜 ‘스파이크’를 ‘강타’라고 말할까‘ 참조)
이 같은 용어 선택에는 북한 특유의 행위 중심 언어관이 작용한다. 기술을 추상적 명칭으로 부르기보다, 경기장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동작을 언어로 포착하려는 태도다. 열린 공격은 공격의 속도나 전술적 분류가 아니라, 공이 열려 있고 공격이 가능한 상태에서 강타가 이뤄진다는 상황 묘사에 가깝다. 선수와 지도자, 관중 모두가 말뜻만 들어도 장면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언어다. 결국 열린 공격이라는 말은 북한 배구 용어 체계가 지향하는 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외래어를 배제하기 위한 배제가 아니라, 경기 동작을 가장 직접적으로 설명하려는 선택인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관련기사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