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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79] 북한 배구에선 왜 ‘미들 블로커’를 ‘중앙막음수’라 말할까

2026-01-29 06:00:38

2023년 북한 노동당 창건 78주년 기념 배구 경기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2023년 북한 노동당 창건 78주년 기념 배구 경기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배구에서 ‘미들 블로커’는 영어 ‘middle blocker’를 발음대로 표기한 말이다. 이 단어는 가운데를 의미하는 ‘middle’와 막는 사람이라는 의미인 ‘blocker’가 합성한 것이다. 종전에는 이 포지션을 일본식 영어로 ‘센터(center)’라고 부르다가 2000년대들어 여러 외국인 선수들이 국내 프로배구에 출전하면서 국제 용어인 미들 블로커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본 코너 465회 ‘왜 센터(Center)를 미들블로커(Middle Blocker)라고 말할까’ 참조)

middle은 고대 라틴어 ‘medius’에서 파생됐다. 고대 영어 ‘middel’을 거쳐 현대 영어에 이르렀다. 배구에선 네트 중앙, 즉 속공과 차단의 핵심 공간을 뜻한다. blocker는 막는다는 뜻인 동사 ‘block’와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이 결합한 말이다. block는 덩어리, 통나무를 의미하는 ‘bloc’에서 유래한 말이다. 배구 규칙이 정비되던 20세기 초, 네트 앞에서 점프해 공을 막는 행위를 block이라 부르면서 blocker’이라는 포지션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초기 배구(1910~30년대)에는 포지션 구분이 느슨해 ‘센터(center)’ 또는 ‘프런트 플레이어’ 정도로 불렸다. 그러나 1950~60년대: 소련·동유럽 국가들이 조직적 블로킹 전술을 발전시키며
중앙에서 상대 공격을 읽고 이동하는 전담 선수 개념이 등장했다. 1970년대 이후 속공(quick attack)이 정교해지면서 중앙 공격과 차단을 동시에 수행하는 포지션이 분화됐으며, 이 과정에서 네트 중앙(middle)과 차단 전문(blocker)이라는 의미를 담은 미들 블로커가 국제 배구의 표준 용어로 굳어졌다.

농구의 ‘센터’와 달리 배구는 항상 중앙에 고정돼 있지 않고 블로킹 시 좌우로 빠르게 이동하며 공격보다 차단 역할이 전술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단순 위치 개념인 센터 대신 행위 중심의 명칭인 블로커가 선택됐다. 미들 블로커라는 말은 중앙 공격수이면서 동시에 수비의 첫 관문이고, 팀 전술의 리듬을 좌우하는 존재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북한 배구에선 미들 블로커를 ‘중앙막음수’라고 부른다. 미들은 ‘중앙’으로, 블로커는 ‘막음수’ 또는 ‘차단수’으로 치환했다. 중앙막음수는 화려한 포지션명이 아니라, 코트 중앙에서 상대 공격을 막아내는 임무 수행자라는 의미를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선수 개인의 특성이나 개성보다는, 팀 전술 속에서 맡은 역할이 우선되는 명명법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용어가 공격적 속성을 의도적으로 희석한다는 데 있다. 국제 배구에서 미들 블로커는 속공의 핵심이자, 가장 역동적인 공격 루트를 담당한다. 그러나 북한 용어에서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공격’이 아니라 ‘막음’이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상황에 따라 이 포지션을 ‘중앙공격수’라 부르기도 하지만, 기본 호칭은 어디까지나 ‘중앙막음수’다. 이는 배구를 흐름의 주도보다는 상대 제압과 차단의 스포츠로 인식하는 관점과 맞닿아 있다.

이 같은 용어 선택은 북한 스포츠 전반에 관통하는 언어 원칙과도 연결된다. ‘아웃사이드 히터’는 ‘측면공격수’, ‘네트 터치’는 ‘그물접촉’, ‘더블 컨택트’는 ‘두번치기’가 된다. 영어식 포지션 명칭이 지닌 전문성과 국제성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행위 중심의 언어가 우선된다. 스포츠 역시 대중 교양의 일부이자, 집단 교육의 수단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본 코너 1671회 ‘북한 배구에선 왜 ‘네트 터치’를 ‘그물접촉’이라 말할까‘, 1674회 ’북한 배구에서 왜 '더블 컨택'을 '두번치기'라고 말할까‘, 1677회 ’북한 배구에선 왜 ‘아웃사이드 히터’를 ‘측면 공격수’라 말할까‘ 참조)

결국 중앙막음수라는 말은 단순한 포지션명이 아니다. 개인의 스타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현대 배구의 흐름과 달리, 북한 배구는 용어부터가 역할·임무·집단성을 강조한다. 중앙에서 뛰는 선수는 주인공이 아니라 방패이며, 화려한 공격수이기보다 팀을 위해 먼저 몸을 던지는 존재다. (본 코너 1600회 '사회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스포츠 언어' 참조)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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