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 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에서 올림픽 10연패를 차지한 한국 대표팀. [파리=연합뉴스]](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40901074927089885e8e9410871751248331.jpg&nmt=19)
원래 한국 양궁은 처음부터 강했던 것은 아니다. 1959년 체육교사였던 석봉근(1923-1996) 선생이 서울 중앙시장 부근 한 고물상에서 양궁을 처음 발견한 이후 손수 교본 등을 제작하며 제자들에게 양궁을 가르친 것이 한국 양궁의 시작이었다. (본 코너 1181회 ‘왜 양궁이라 말할까’ 참조)
근대올림픽 초기에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됐다가 퇴출당한 양궁은 1972년 뮌헨 올림픽서 올림픽종목으로 복귀했으나 당시만 해도 국내서 양궁은 발걸음도 떼지 못했던 시기였다. 올림픽 참가는 얼두도 내지 못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도 양궁은 국내 발판이 없어 선수단 구성서 제외됐다. 당시 정부는 성적이 좋은 종목에만 대표팀이 참가하도록 했는데, 그 때문에 초기 양궁 선수들은 대표팀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한국 양궁은 1984년 LA 올림픽서 서향순이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서향순은 여자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비체급 경기서 나온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다. 서향순이 레슬링, 복싱, 유도 등 한국 스포츠의 체급 투기 일변도 현상을 타파한 후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비체급 경기서 금메달이 급속하게 증가했다. 이후 한국스포츠는 자연스럽게 양궁, 사격, 배드민턴, 펜싱 위주로 구조조정이 이뤄졌던 것이다.
한국 양궁에는 ‘국가대표 선발전이 올림픽 금메달 결정전보다도 어렵다’는 말이 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도 다음 올림픽 출전을 보장하지 못할 정도로 선발 경쟁이 치열하다. 훌륭한 교육 체계와 출중한 실력을 갖춘 선수층, 철저히 실력 기반으로 뽑는 공정한 선발 방식 때문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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