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나는 종종 전혀 다른 이들을 주목한다. 조용히 준비 운동을 하고 굳이 자신의 클럽 브랜드나 비거리, 핸디캡을 드러내지 않으며 스코어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실수도 차분히 넘기는 사람이 있다. 그는 별로 말이 없다. 하지만 샷은 생각보다 정직하고 그의 스윙은 요란하지도 않다. “이번에 새로 골프 시작하셨어요?” 하고 물었는데 알고 보니 20년 골프 인생을 가진 진짜 ‘중급자’였다.
이럴 때 떠오르는 사자성어가 있다. ‘은인자중(隱忍自重)’
이 고사성어는 『진서(晉書)』에 나오는 명장 제갈탄(諸葛誕)의 처신에서 유래했으며 때를 기다리며 자중하고 말보다 행동으로 결과를 드러내는 사람을 높이 평가할 때 사용된다.
첫 홀 그저 조용히 파, 둘째 홀 보기로 스코어카드에 숫자 하나 더하더니, 셋째 홀 무심한 듯한 샷으로 버디, 누구보다 스코어에 연연하지 않고 누구보다 흐름에 흔들리지 않는다. 이런 골퍼를 보고 있으면 떠오르는 인물로 강태공이 있다. 낚싯줄에 미끼조차 달지 않고도 조용히 고기를 기다리던 인내의 상징적 인물이다. 혹은 초야(草野)의 고수로 세상에 나서진 않았지만 때가 오면 반드시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골퍼의 마음을 가진 이들이다.
은인자중하는 골퍼는 '오늘 내게 맞는 샷 하나'에 집중한다. 남의 거리에 휘둘리지 않고 조용히 클럽을 닦고 백스윙은 작지만 그 속엔 수십 번의 연습이 담겨 있다. 요란한 소리도 과장된 액션도 없다. 하지만 끝나고 보면 그가 가장 묵직한 골프를 남긴다.
우리도 가끔 골프 인생에서 그런 길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은인자중 - 진짜 고수는 말보다 샷이 앞선다.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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