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LA 올림픽 개회식 때 필자 모습. [사진제공 김원식]](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1126062039008245e8e9410871751248331.jpg&nmt=19)
한 번은 태릉에서 의정부 쪽 거리주 코스 60km를 뛰는데 마지막 3km를 남겨두고 너무 배가 고픈 거예요. 그런데 저만치에서 한 커플이 무언가를 먹으면서 가고 있는데 그것만 눈에 보이더라고요. 가까이 가서 보니 포도 한 송이였는데, 포도가 덜 익어서 그랬는지 흙길에 버렸어요. 그 포도를 주워 먹으면서 허기를 없애고 완주한 적도 있어요. 또 태릉선수촌 인근 불암산 근처에는 유명한 먹골배라는 과일 농장이 많았는데 배고픈 시절 달리다가 떨어진 상처 난 배를 주워 먹으며 달린 선수 시절을 돌아보면 국가대표가 되기 전에도 후에도 죽기 살기로 뛴 것밖에 없었습니다.
또 한국체대 1학년 때 저녁 점호가 끝나고 평소에 훈련하며 보아둔 학교 옆 삼육대학교 캠퍼스 내에 있는 딸기 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밤늦게 육상 중·장거리부 친구들과 몰래 딸기 밭에 갔다가 학생들에게 들켜 도망쳤죠. 캄캄한 밤이라 앞뒤 분간도 못하고 불암산 밑에 있는 높은 담을 넘었는데, 하필 군부대였던 거예요. 훈련 중인 군인들에게 간첩으로 오해받아 죽을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1984년 LA 올림픽 마라톤 결승선에 들어온 필자를 손기정 선생(오른쪽)이 맞아주며 격려하고 있다. [사진제공 김원식]](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1126062131066955e8e9410871751248331.jpg&nmt=19)
저는 1982년에 국가대표가 되었습니다. 82년 5월 전국종별육상선수권 대회 1500m 결승 경기에서 3분 50초 3으로 한국 신기록을 세우면서 인생이 바뀌었어요. 처음에는 중거리 선수를 하다가 마라톤으로 전향해, 2년 뒤인 1984년 3월 제55회 동아마라톤에 출전했습니다. 그 대회가 LA 올림픽 최종 선발전이었어요. 그토록 꿈에 그리던 올림픽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골인 후 기진맥진해 쓰러져 있는데 누군가가 수건을 둘러주며 등을 어루만져 주셨어요. 뒤돌아보니 바로 손기정 선생님이셨어요. 지금까지 수많은 출발선에 섰고, 골인을 했지만... 그날의 가슴 벅찬 격려와 위로의 기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1991년 은퇴 후 처음에는 경기도 과천 초·중학교에서 꿈나무 육상 선수들을 지도했고, 이후 후진 양성을 위해 고향으로 내려왔어요. 1995년 3월에 전남 함평 나산고등학교에 체육 교사로 부임 후 육상부를 창단해 활동했습니다. 재능 있는 우수 선수를 발굴해 전국 대회에서 입상도 하면서 학교의 명예도 올리고, 전남 체육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2014년부터 부전공 과목으로 진로진학상담을 지도했습니다. 진로 지도에 관심을 둔 이유는 운동선수들이 은퇴 후에 겪는 진로의 어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최근 10년 동안 우리나라 은퇴선수의 무직률이 평균 40% 정도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없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국가적인 시스템이 필요한 때입니다. 평생 운동만 했던 선수들은 물론이고, 특히 올림픽 출전 경험이 있는 선수라면, 그 경험을 살려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거든요.
![마라톤 중계방송 후 [사진제공 김원식]](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1126062233063165e8e9410871751248331.jpg&nmt=19)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저는 학교에서 체육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교육의 선진국 독일이나 핀란드에서는 체육 시간에 두 명의 교사를 배치한다고 합니다. 또 체육 수업을 소홀히 하면 학부모님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는다고 합니다. 체육 교육의 중요성을 느끼는 사례라고 봅니다.
마라톤은 정직합니다. 마라톤은 거짓말하지 않거든요. 뛴 만큼, 흘린 땀만큼 무조건 결과가 나오는 운동입니다. 자세히 보면 마라톤은 인생을 많이 닮았습니다. 42.195km에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어요. 쉬지 않고 꾸준히 뛰어야 하는 것이 그렇고 숱한 좌절과 시련이 들락거리는 것이 그렇습니다. 주저앉고 싶은 심정, 골인 지점을 향해 처절하게 싸우는 자기와의 싸움 역시 그렇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포기’라는 단어가 수없이 나를 유혹합니다. 하지만 가파른 오르막길이 있으면 또 탁 트인 내리막길도 있죠. 뜨겁게 흘러내리는 땀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고, 타 들어가는 갈증을 해소할 물 한 모금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뛰나 봅니다. 달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전남 장성중학교 운동장에서 달리는 모습. [사진제공 The-K 매거진 한국교직원공제회]](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1126062258049145e8e9410871751248331.jpg&nmt=19)
[김원식 마라톤 해설가·전남 장성중 교사]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관련기사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