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753] 허들 넘고 물 건너는 3,000m 장애물 경기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김학수 기자| 승인 2022-07-20 06:49
국내 육상 대회 여자 3,000m 장애물 경기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내 육상 대회 여자 3,000m 장애물 경기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육상 3,000m 장애물 경기는 영어 약자로 3,000m S.C로 표기한다. S.C의 정확한 명칭은 ‘Steeplechase’이다. 이 단어는 경사진 언덕이나 높은 첨탑이라는 의미인 명사형 ‘Steeple’와 쫓는다는 동사형 ‘chase’가 합쳐진 것이다. 이 단어는 처음에는 야외나 벌판을 가로 질러 나가는 경마나 장애물 경마 용어로 쓰였다.

장애물 경마는 18세기 아일랜드 시골 마을에서 유래했다. 1752년 아일랜드 남부 시골마을 코크에서 말로 두 교회를 왕복하는 경기로 처음 열렸다. 당시 마을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인 교회 첨탑을 출발점과 종착점으로 정해 경주를 한 것이다. 말을 타고 달리는 도중 마주치는 낮은 돌담과 작은 개울 등 자연적인 장애물을 넘어 먼저 들어오는 선수가 이기는 방식으로 경기가 펼쳐졌다. 이 경기가 표준화되면서 돌담은 허들이 됐으며, 개울은 장애물 경주의 독특한 특징이 된 물웅덩이로 바뀌었다. (본 코너 752회 ‘왜 ‘허들(hurdle)’이라 말할까‘ 참조)
19세기 전반기부터 영국 런던에서 발행된 주간지 ‘벨스 라이프(Bell’s Life in London)’지는 1838년 4월28일자 호에 버밍엄대 의대생 6명이 셔츠와 바지를 입고 늪지대에서 달리기를 하는 모습을 소개했다. 당시 의대생들은 산업혁명으로 공장 근로자들이 운동을 할 기회를 갖지 못해 근력과 지구력을 잃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자신들이 숲속에서 달리기를 통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됐다고 한다.

이 경기가 신문에 소개된 지 10여년이 지난 1850년 가을, 옥스퍼드대 학생들이 승마로 장애물 경주를 마친 뒤 기숙사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가진 자리에서 “다음에 우리 발로 장애무 경주를 하자”고 제의했다고 한다. 그들은 옥스퍼드대 근처의 빈슬리에서 2마일(3200m) 코스에서 장매물 24개를 설치해놓고 경기를 했다는 것이다.

당초 3,000m 장애물 경기는 1860년 옥스퍼드대 스포츠 종목으로 2마일 크로스컨트리 장애물 경주로 시작됐다. 1865년 평평한 경기장에서 장애물을 넘는 경기로 바뀌며 오늘날과 같은 경기로 발전했다.

3,000m 장애물경기는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서 처음 시작됐다. 처음에는 2,500m와 4,000m 장애물 경기가 열렸으며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선 2,590m 장애물 경기가 개최됐다. 1908년 런던올림픽 때부터 지금과 같은 3,000m 장애물 경기로 펼쳐졌다. 여자 경기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부터 시작됐다. 국제육상연맹 규정에 따르면 3,000m 장애물 경기는 고정된 28개 장애물과 7개 물웅덩이(워터 점프)를 설치해야 한다. 2,000미터 장애물 경기는 18개 장애물과 5개 워터 점프가 있다. 국제육상연맹은 원래 3,000m 장애물 경기는 허들 경기가 아닌 중장거리종목으로 분류한다.
우리나라 언론에선 일제강점기 때부터 ‘Hurdle’과 함께 ‘Steeplechase’를 장애물 경기로 분류해 ‘3,000m 장애물(障碍物)’로 표기했다. 두 종목을 장애물 경기로 함께 불렀던 것이다. 조선일보 1924년 5월16일자 ‘공전성황(空前盛况) 평양시민(平壤市民) 육상운동대회(陸上運動大會)’ 기사는 장애물 선수 입상자 명단을 실어 보도했다.

아프리카의 케냐는 3,000미터 장애물 경기에서 1968년 멕시코 올림픽부터 2016년 리우 올림픽까지 2개를 제외하고 남자 종목에서 금메달을 휩쓸며 최대 강국으로 자리잡았다. 여자종목에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러시아, 튀니지, 바레인 등이 잇달아 우승을 차지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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