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언론은 곧바로 그녀를 “공화국의 딸, 백두의 금메달 소녀”라 부르며 영웅으로 치켜세웠다. 경기장에서의 승리는 단순한 체육 성과가 아니었다. 냉전의 잔재가 남아 있던 1990년대, 국제 고립 속의 북한이 세계를 향해 내민 주체의 존재선언이었다. (본 코너 1575회 '북한에선 왜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리호준을 ‘주체사격의 시조’라고 말할까' 참조)
북한에서 ‘공화국’(共和國, Republic) 이라 부르는 이유는 단순한 국호 표현이 아니라, 정치이념·국가정체성·역사적 정당성이 모두 담긴 개념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국호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으로 정한 것은 1948년 건국 당시 “조선왕조의 복귀도, 자본주의국가의 복제도 아닌 인민이 주인인 새 나라”임을 선언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계순희를 ‘공화국이 딸’이라고 불렀던 것은 공화국을 빛낸 여성이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는 것이다. (본 코너 1554회 ‘마라톤 정성옥이 스포츠 선수로는 북한에서 유일하게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은 이유는‘ 참조)
계순희는 잠시 반짝인 별이 아니었다. 2001년, 2003년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 52㎏급 2연패를 달성하며 북한 체육사의 새로운 전설로 자리 잡았다. 체급을 바꾸며 세계 정상에 올랐다.
그녀의 유도는 기술보다 정신으로 설명되곤 한다. 강철 같은 집중력, 체구를 넘어서는 근성, 그리고 조국을 향한 절대적 헌신. 계순희가 보여준 한판은 단순한 승부의 결과가 아니라 국가의 의지가 투영된 몸짓으로 선전됐다.
은퇴 후 계순희는 평양에서 체육지도자로 활동하며 후배 양성에 나섰다. 그녀의 제자들 가운데서도 세계 메달리스트가 배출되며, 북한 유도의 뿌리는 여전히 단단히 이어지고 있다. 북한이 오늘날 유도, 역도, 체조 등에서 세계 정상권을 유지하는 배경에는 바로 이런 체육영웅들의 ‘정신 계보’로 해석되곤한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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